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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2020.06.01

무한개의 몸과 마음

나를 위한, 나에 의한 몸의 존재가 필요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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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몸의 말들>에는 내 몸을 향한 다양한 시선이 존재합니다. 몸에 관한 사적인 이야기를 펼치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치도
과거의 저는 ‘예쁜 여자’가 되고 싶었어요. 다이어트를 심하게 했고 식이 장애를 겪었었죠. 건강을 위해 다이어트를 멈추기 전까지는 사이즈 강박에 찌고 빼고를 반복했어요. 생각을 바꾸고 행복에 집중하면서 내 몸을 사랑하는 방법을 배웠고 다양한 채널에서 보디 포지티브에 관한 목소리를 꾸준히 내고 있어요. 구현경 보디 포지티브가 단순히 긍정이 아닌 복잡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결심했어요. 제가 가진 보디 포지티브가 굉장히 보편적이면서도 사적인 부분에서는 재미있을 것 같기도 했고요. 정말 다양하게 몸을 만들었거든요. 몸을 만들었던 경험을 공유하면서 이상적인 여성의 몸, 남성의 몸 혹은 보편적인 몸에 속했을 때 내 마음이 어떤 상태였는지 들여다보고 싶기도 했어요. 고권금 집필 제안을 받을 당시 내 몸의 소리를 듣는 것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어요. 보디 포지티브로 몸을 긍정하든 부정하든 몸을 좀 알아야 하는데 너무 막막했거든요. 무대에서는 퍼포먼스를 하는 게 중요하니까 일단 구르다 보니 몸은 자꾸 뒷전이 되었고요. ‘일단 참자’ 하는 생각이 부작용으로 나타났고 공황장애가 생겼을 때 정신을 차렸어요. 이때부터 몸을 들여다보게 되었고 제안이 왔을 때 뭔가 할 수 있는 말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Q 필요한 동시에 지겹도록 들리고 있는 보디 포지티브를 각자 어떻게 정의하고 있나요?
고권금
제 상태를 아는 것이요. 몸은 어떤 이야기를 하는데 정신적으로 차단하는 경우가 많아요. 다양한 상황 속에서 몸의 반응을 들어주고 인식하며 답을 하는 게 제게는 몸을 긍정화하는 작업인 것 같아요. 치도 ‘보디 포지티브’라는 사전적, 보편적 의미가 있잖아요. 있는 그대로 나의 몸을 사랑하고 긍정하는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하려니까 참 어려웠어요. 저의 몸을 미워하고 혐오했던 사람으로서 갑자기 하루아침에 ‘네 몸무게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 하면 뜬구름 잡는 소리 같고, 어떻게 하라는 가이드라인도 없으니 안 되거든요. 저의 치유 과정을 되돌아보면 나 스스로를 마주 보고 인정하고 이해해나가는 과정이 있었어요. 제게는 그 과정이 보디 포지티브였던 것 같아요. 구현경 수용의 과정을 거치는 거라고 생각해요. 몸이라는 건 기본적으로 변하지 않는다는 걸 받아들여야 해요. 우리의 머릿속에는 다양한 이데아가 창조되는데, 몸은 단 하나만 자리 잡혔어요. 최근에 인상 깊었던 문장 중 ‘어떤 것의 욕망은 그것의 결핍을 강화한다’라는 말이 있어요. 어떤 몸을 가져야 한다, 긍정해야 한다는 그 집착 자체가 나를 불행하게 만들어요. 가령 좋은 집에 살고 싶다는 욕망이 있어요. ‘나도 언젠가 저기에 살게 되겠지’가 아니라 ‘나는 왜 저기에 살 수 없지. 불행해’로 사고가 되는 거예요. 마찬가지로 내가 몸의 외형에 대해 자꾸 생각하고 긍정해야지 하는 집착조차 나를 불행하게 만드는 정신적인 씨앗이 될 수 있다는 걸 받아들이는 게 체념이에요. 그래서 그것조차 생각하지 말자. 여기에서 몸을 향한 사랑이 시작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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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나를 마주하는 그 ‘수용’의 시작이 정말 어려워요.
구현경
저도 아직 오락가락해요(웃음). 매일 널뛰지만 그 요철을 멀리서 봤을 때 괜찮은 상태로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거죠.
Q 수용 이후 체념의 과정은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까요?
구현경
몸에 대한 단일한 이미지에 도달할 수 없다는 걸 인식해야죠. 그러기 위해서는 내 체형에 맞지 않는 이상향이 주입되었다는 걸 인지하는 게 아주 중요해요. 어쩌면 이게 사랑과도 이어질 수 있는데, 사람들이 아름다운 몸을 가졌을 때 사랑을 담보하지 않는다는 걸 알아야 할 것 같아요. 치도 저도 예전 꿈이 ‘가장 예쁜 여자’였어요. 그 이상에 도달하기 위해 여러 과정을 겪고 나서야 그 자리는 허상이라는 걸 깨달았죠. 끝이 없는 마라톤이거든요. 경험하고 깨지고 나니까 보이더라고요. 내가 얼마나 바보같이 시간을 낭비했는지. 구현경 우리는 성장하면서 미의 축에 대해서 단계적으로 학습해왔어요. 이제는 언런(UN-learn)을 해야 하는 단계에요. 몸을 다양한 시각에서 바라보면서 몸매, 섹시, 핫 이런 기준을 덜 배우고 파괴해야죠. 치도 제 유튜브 채널의 ‘치도의 옷 입히기’콘텐츠도 용기이자 파괴의 시작이었어요. 여러 벌의 옷을 입기 위해 제가 속옷만 입고 등장하거든요. ‘이걸 야하게 보지 마’라는 의미인 동시에 속옷만 입은 제 모습이 야한 게 아닌 몸의 어떤 모습으로 보여주고 싶었어요. 구현경 저도 한때 목욕탕을 많이 다녔어요. 다양한 사람들의 몸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인식하려고 노력했죠. 고권금 관찰이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차단하려고 하지 말고 자꾸 들여다봐야 해요. 큰 맥락으로 보면 결국 시간을 들여야 하는 일이에요. 누군가를 이해할 때 우리가 흔히 ‘사람은 다 장단이 있잖아’ 이런 위로를 하잖아요. 그런데 몸에는 그 기준이 너무 엄격해요. 심지어 획일화된 이미지가 콱 박혀 있죠. 자꾸 관찰을 하고 들여다보면 그런 기준만 있지 않다는 게 보일 거예요. 치도 공감해요. 저도 앞으로 다양한 여성의 몸을 편안하게 보여주는 콘텐츠를 계속 만들고 싶어요. 그래서 ‘사이즈 차별 없는 패션쇼’도 2회를 기획하고 있고요.
Q 몸을 단편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 데는 타인의 시선에 관대한 문화의 영향이 크다고 보는데요. 우리는 왜 이렇게 몸에 대한 평가에 관대했을까요?
구현경
제가 시선의 물리적인 비환원성에 대해 글을 쓴 적이 있는데, ‘시선’이라는 비물질성 자체가 침해를 강하게 느껴도 대응할 수 없게 만드는 속성이 있는 것 같아요. 인간에게는 눈이 있고 심미안이라는 게 있잖아요. 시대의 심미안이라는 건 확실히 있다고 생각해요. 아기들도 태어날 때부터 예쁜 사람을 더 많이 쳐다본다는 연구 결과가 있어요. 유미주의자인 인간은 당연히 아름다운 것을 좇게 되고요. 치도 방금 심미안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제가 요즘 가장 고민하는 부분이 그것이거든요. 보디 포지티브의 이면에는 ‘모든 몸은 아름답다’라는 개념이 있는데 애초에 다 아름다울 필요가 있나 싶으면서도 인간은 본능적으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면이 있다는 생각이 서로 충돌하는 거예요. 구현경 그래서 스스로 미에 대한 시각을 계속 확장해야 해요. 저는 손에 굳은살이 많아요. 단적인 미의 시선으로 봤을 때는 아름답지 않죠. 하지만 이 안에 쌓인 시간과 노력, 그 안의 분투를 아름다움으로 느낄 수도 있어요. 유하니 팔라스마라는 핀란드 건축가가 쓴 <건축과 감각>이라는 책을 보면 시각 때문에 다른 감각이 죽어버렸다는 내용이 있어요. 심미안을 여러 층위로 나눠서 감각적 심미안, 감정적 심미안으로 접근해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치도 복합적 심미안인 거네요. 복합적 심미안이 있으면 모든 몸은 아름다울 수 있는 거네요. 보디 포지티브를 전달하며 개인적으로 이 부분이 딜레마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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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말들> 강혜영·고권금·구현경·백세희·이현수·치도· 한가람·황도 지음, 아르테 펴냄.
Q 타인의 시선에는 관대한 반면, 스스로 몸을 들여다볼 때는 유독 혹독해요. 생리통을 호소하면 유난스럽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몸의 반응을 숨기고 외면하는 문화도 한몫했다고 볼 수 있겠죠?
구현경
개인적으로 코로나 덕분에 사람들이 몸에 대한 이해가 조금 생겼다고 봐요. 자신의 몸을 느끼는 방식이 좀더 세밀해졌달까.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밀폐된 공간에서 누군가 기침을 하면 신경도 안 썼어요. 핸드폰을 하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행동이었죠. 그런데 요즘은 ‘헉!’ 하고 쳐다봐요. 머리가 조금 아프거나 열이 나거나 피로해도 반응해요. 몸의 감각을 언어화된 말로 이야기를 하죠. 저는 이게 몸을 감각하는 여정이라고 생각해요.
Q 하늘 아래 같은 레드는 없듯이 몸의 상태를 표현하는 언어가 풍성해질 필요도 있다고 봐요.
구현경
맞아요. 언어는 사고의 구조잖아요. 우리가 몸을 표현하는 언어는 너무 납작해요. 고권금 언어가 플랫하다고 하셨는데 저도 이 한계가 분명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감정을 고뇌하는 시간이나 몸의 신호를 파고드는 시간을 들여야 해요. 몸은 거짓말을 할 수 없거든요. 다 드러나요. 치도 우리 사회가 몸의 감정을 통제해야 한다는 걸 지향하고 학습화시키는 것 같아요. 제가 예전에는 식욕이라는 감정을 정말 혐오했어요. 먹으면 살이 찌니까요. 이제와서 과거 제 식습관을 돌아보니까 식욕은 몸이 저한테 건강하자고 보낸 신호였어요. 기초대사량을 채우지도 않을 만큼 먹었으니까요. 그런데 저는 식욕을 참지 못하는 사람은 바보고, 게으르고, 의지가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죠. 이제는 먹을 만큼 먹으면 자연스럽게 숟가락을 놔요. 제 몸을 믿고 신뢰하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요. 구현경 몸이 진짜 재미있어요. 생리 전에 식욕이 도는 것도 일종의 흐름이에요. 생리를 하면 대사가 올라가서 칼로리를 더 섭취해야 해요. 몸은 그걸 아니까 연료를 채우는 거고요. 근력 운동은 근육을 찢었다가 다시 붙이는 과정의 연속인데 운동을 몇 주 하면 이상하게 치킨이 먹고 싶어요. 그때 ‘와, 이렇게까지 운동을 하는데 내가 미친 거 아니냐’라는 생각이 들죠. 근데 그거 미친 거 아니에요. 몸이 단백질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런 거거든요. 고권금 그래서 나의 패턴을 꼭 알고 있어야 해요. 내가 어떤 일상을 살아가고 뭘 주로 하는지에 따라 몸의 반응이 다 다르거든요. 안무가인 제 친구는 토마토와 고구마로 다이어트를 했는데, 연습이 끝나면 녹초됐어요. 부상이 잇따랐고요. 몸이 원하는 만큼 에너지와 영양을 가져가지 못하니까 대립이 일어나는 거죠. 몸은 장기전이에요. 지금 이 순간만 살고 말 거 아니잖아요. 구현경 맞아요. 몸은 일회용품이잖아요.
Q 지금 되게 반성하게 되는데, 이미 막 쓴 몸에 미래는 없는 걸까요?
구현경
몸에 미래가 있다고 생각하면 안 돼요. 몸에는 미래가 없어요(웃음). 피트니스를 배울 때도 몸은 변하지 않을 거라고 가르쳐야 하거든요. 몸에 대한 집착을 벗어야죠. 운동을 가르칠 때 어떤 사람들은 자책을 해요. ‘왜 이게 안 되지’라는 고민으로 한 시간을 보내는데 어떤 사람은 아주 정확하게 활동 가용 범위를 알아요. 이때 저 완전 감동해요. 스스로 한계를 인식하고, 어떻게 하면 자신의 능력을 잘 끌어낼 수 있는지에 대한 인식이 분명한 사람이거든요. 행복한 사람이구나 하는 감화가 있어요. 제가 예전에 요가 동작을 무리하게 하다가 햄스트링에 문제가 생겼어요. 치도 한편으로는 욕심을 내려놓을 수 있는 환경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이상적인 욕심이 생기는 이유는 사회가 인정해주는 게 그거 하나밖에 없으니까 모두가 그것에 도달하기 위해 애를 쓰잖아요. 꼭 ‘저것’이 아니어도 기회가 많다는 걸 알려주고 그런 환경을 조성해줄 필요가 있어요. 고권금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과 더불어 자기 확신도 중요한 것 같아요. 확신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몸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져요.
#보디 포지티브 #몸의 말들 #치도 #구현경 #고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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