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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r2021.03.22

7인의 트로트 여제

지난 12월부터 약 4개월간의 대장정을 마치고 돌아온 트로트 여제 7인의 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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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지윤
소녀시대 효연의 스타일을 좋아해 힙스러운 패션에 요즘 빠져 있다는 홍지윤은 싱어송라이터로 얼마 전에 싱글 앨범을 낸 동생 홍주현과 함께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했지만, 다리 부상으로 좌절된 꿈을 <미스트롯2>를 통해 펼치게 됐다. 트로트의 한과 정서가 국악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어 노래를 더욱 즐기고자 인생의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도전할 기회를 찾고 프로그램을 통해 성장하는 경험을 갖고 싶었다고.

아이돌 연습생에서 트로트 여전사로의 전환 아이돌 연습생 시절에도 대표님께 트로트를 하고 싶다고 졸랐던 기억이 있다. 물론 단칼에 거절당했고 아이돌로 데뷔해서 만약에 성공하면 그때 솔로로 트로트 앨범 내자고 하셨을 정도였다. 때문에 아이돌 연습생이었던 시절에 대한 미련은 없다. 다리를 다치고 성대낭종도 심해서 가수 생활을 이어갈 수 있을까에 대한 불안도 있었지만, 그때의 홍지윤이 잘 견디고 버텼기 때문에 지금의 홍지윤이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너무 행복하다.
트로트 바비 아무래도 요정은 많다. 연금술사도 많다. 그런데 바비는 별로 없다. 유일하게 배우 한채영 님이 바비 인형이라는 닉네임을 가지고 있었다. 그 수식어를 내가 감히… 라는 생각에 트로트 바비가 마음에 들었다. 어려운 걸 해내는 승부사 기질이 있어서 여기까지 온 것 같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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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레스 마조네 포 하고, 링 일리앤. 닌다.
김태연
모든 참가자들이 가장 부러운 사람으로 지목하는 9살 국악 신동 김태연은 에너지 넘치고 파워풀하며 씩씩하게 스튜디오를 장악한다. 타고난 재능과 끼는 노력으로 따라잡을 수 없다는 이야기에는 관심이 별로 없는 듯 그저 정말 좋아하고, 하고 싶은 것을 눈을 빛내면서 하는 대찬 어린이다. 순위에 상관없이 하고 싶은 것을 해서 좋다는 어린 천재는 나중에 장민호와 컬래버레이션을 하고 싶다는 얘기도 한다.

우리 아버지 팬들이 우리 아버지로 착각하신 분이 있다. 그냥 같이 사진 찍은 것뿐인데, 그분을 우리 아버지라고 오해한 거다. ‘아버지의 강’을 부르고 난 뒤라 우리 아버지가 아니라고 얘기했다. 아버지가 알면 서운해할까봐 걱정이 좀 됐다. 나에겐 항상 듬직하고 응원해주시는 우리 아버지 때문에 ‘아버지의 강’을 부른 거다. 아빠 사랑해요.
국악 신동의 트로트 어렸을 때부터 판소리를 비롯해 장구, 북, 가야금 등을 배워 다룰 줄 안다. 국악을 했기 때문에 트로트에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꺾기는 확실히 도움이 된다. 판소리 하시는 분들 중에 꺾기 잘하는 분이 많다. 국악을 하면 꺾기는 자연스럽게 하게 되니 트로트할 때 장점이 되는 것 같다. 소리가 배에서 나와야 한다는 것도 같고.
장민호 오빠 삼촌 아니다. 잘생겼고 멋있으니까 오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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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상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김의영
재도전부로 시즌1에 이어 이번 <미스트롯2>까지 될 때까지 도전하는 끈기로 5위를 한 김의영은 첫 경연곡으로 주위에서 뜯어말리는 ‘용두산 엘레지’로 스타트를 끊었다. 시즌1의 진, 송가인의 이미지가 강하다는 이유였다. 심지어 제작진이 통편집을 당할 거라며 만류했지만 뚝심으로 밀어붙여 다음 라운드에 진출했다. 박선주 마스터는 더욱 과감하게 도전하라며 조언을 했고, 다소 부담이 됐던 결승곡 ‘물레방아 도는데’를 마친 후 장민호 마스터는 김의영을 너무 멋있어서 무서운 사람이라고 극찬했다.

<전국노래자랑>이 키운 트로트의 꿈 우연히 TV로 접한 <전국노래자랑> 프로그램에서 트로트를 따라 불러보니 흥도 나고 재미있어서 도전해보고 싶었다. 대전에서 굳이 천안편에 신청했던 것이 첫 무대다. 처음부터 노래를 잘 부르진 않았다. 어린 마음에 앨범만 내면 행사도 할 수 있고 가수가 되는 줄 알고, 아무것도 모르는 채 시작했다. 23살 때부터 29살 때까지 맨땅에 헤딩만 했다. 그래서 <미스트롯2>가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던 거다. 너무도 절실하게, 이걸 놓치면 앞으로 트로트를 못하게 될 것 같았다.
도전의 연속 유일하게 재도전부에서 살아남았다. 재도전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도, 질척대는 것도 아니다. 기회만 있다면 언제든지 도전해야 후회와 미련이 남지 않는다. 두려워서 기회를 잡지 못하는 것만큼 바보 같고 손해보는 건 또 없을 거다. 그걸 해내는 용기가 없다면 나 자신을 용납할 수 없을 것 같다. 시즌1에서 탈락한 후, 바로 결심을 굳혔다. 시즌2를 한다면 무조건 다시 나가겠노라고. 그래서 매일 연습에 매진했다.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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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트 카프리슈, 이어커프 OOCO, 시계 Gc.
별사랑
긍정 마인드로 매 스테이지를 준비하면서, 지금까지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느낀 별사랑의 무대는 많은 발전을 거듭했다. ‘돋보기’ 무대에서 탐정 콘셉트의 재치 있는 모습으로 ‘뽀기’라는 닉네임까지 얻은 그는 마지막 무대 ‘공’으로 현역 자존심을 걸고 정통 트로트로 마무리했다. 준결승 때는 1위로 올라오고, 결승에서는 꼴등을 했던 굴곡 있는 그래프를 그렸지만 그 또한 노래 인생의 다양한 변주일 뿐이라며 자신 있게 웃어 보인다.

별사랑의 탄생 배경 본명은 윤정인이다. 한동안 본명으로 활동하다가 기억에 남는 임팩트 있는 발음이 아니어서 그런지, 행사 무대에서도 기억을 잘 못하시더라. 무명이기 때문에 한 번 무대 위에 올라가도 이름은 남기고 와야 했다. 고민을 하던 중 집에서 애칭으로 불렸던 사랑이와 스타라는 의미의 ‘별’을 붙여 그렇게 ‘별사랑’이 탄생했다. 내 노래는 잊어버려도 ‘별사랑’이란 이름은 기억하시더라. 성공이다(웃음).
전천후 아티스트 전문적으로 화려한 기술은 아니지만, 드럼을 치거나 기타와 키보드 연주까지 가능하다. 여건만 되면 오랫동안 악기를 배우고 싶다. 다양한 재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한데 모인 이 업계에서 노래만으로 살아남기엔 경쟁력이 너무 떨어져서 밴드를 오랫동안 했던 경험을 살려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연습해서 몸에 익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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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트 몬테바르끼, 슈즈 슈바이초이, 시계 Gc.
김다현
<미스트롯2> 미에 빛나는 김다현은 이제 10살인 국악 소녀다. 교육가 겸 시인인 김봉곤 훈장의 딸로 더 유명한 김다현은 5살 때 판소리에 입문해 국악으로 기본기를 다져왔다. 6살 때 아버지의 제안으로 처음 트로트를 부르며 <전국노래자랑>에 도전했지만 예심에서 자꾸만 탈락하는 불운을 겪었다. 하지만 오히려 어린 김다현에겐 좋은 자극제가 되어 트로트에 더욱 도전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훈장님의 딸 김다현 어렸을 때부터 서당 공부, 판소리, 예절 교육을 받아와서 그런지 또래보다 좀 더 어른스럽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애늙은이라는 소리인데, 이젠 너무 익숙한 말이라 괜찮다(웃음). 아버지는 딸이니까 항상 응원해주시고 무대에 대한 조언도 아끼지 않으신다. 좀 더 나은 무대를 위한 제안 같은 것도 해주신다. 선생님 역할과 아버지로서 따뜻한 조언을 동시에 해주시기 때문에 늘 감사드린다.
댄스 본능 제작진 오디션 때도 ‘눈누난나’를 췄다. 춤추는 것을 좋아한다. 어렸을 때 관심이 있어 댄스 그룹도 해보고 배웠던 경험이 경연 프로그램에서 유용하게 쓰인 것 같다. 가야금이나 악기를 다룰 땐 조금 힘든 부분이 있었는데, 춤은 이상하게 지치지도 않고 자꾸만 하고 싶어진다. 춤출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면 열심히 도전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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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상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은가은
원곡자인 진성 마스터 앞에서 ‘님의 등불’로 용감하게 신고식을 치렀지만 갈 길이 먼 것처럼 보였던 그때, 대부분 남자 원곡으로만 승부를 보면서 감정, 음정 등이 최고라는 찬사를 받기 시작했다. 게다가 4개월이라는 경연 기간 동안 다소 게을렀던 은가은의 생활 패턴이 바뀌기 시작했다.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경연에 임하면서 잊고 있었던 양지의 에너지가 발산된 것이다. 잃어버린 자신감을 회복하기에 충분했다. 영상에 달리는 댓글에는 삶을 포기했던 순간 은가은의 노래를 듣고 다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사연까지 등장했다.

트로트 엘사 은가은 이야기 21살 때 서울로 올라와서 연습생 생활만 8년을 지낸 후 27살에 데뷔했다. 2014년 ‘Let It Go’를 커버하는 영상으로 인지도를 얻어 SBS <스타킹>에도 출연했고 신해철 님이 키운 밴드 ‘스핀’의 보컬로 활동하면서, <신해철의 고스트네이션> 양송이 작가로 활동하기도 했다. 신청곡이 들어오면 라이브로 노래도 같이 부르며 데뷔 전 홍보에 힘을 싣기도 했다.
<미스트롯2> 무명 시절은 외로운 싸움이었다. 작은 무대에 서는 것조차 두려워할 정도로 힘든 나날도 있었는데, 음악을 포기하기 전 마지막으로 한 번만 해보자 해서 도전한 프로그램이다.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작곡가로부터 트로트로 전향하라는 말을 들었기에 우선 떨어진 자존감 회복을 위해서라도 이건 필수로 지원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 장르부 출신 연기하는 것을 좋아해서 뮤지컬에 도전했다. 비록 코로나19 때문에 중단되긴 했지만, 연출 선생님께서 “너는 노래로 인지도를 쌓겠지만, 결국 연기로 터질 거다”라고 말해주신 것이 자극제가 됐다. 뮤지컬로 대극장에 서고 싶은 마음은 있다. 최종 목표는 임창정 선배님처럼 노래, 개그, 연기, 뮤지컬까지 섭렵할 수 있는 만능 엔터테이너로 성장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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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츠 라이, 팬츠 브쥬.
양지은
이런 화보 촬영이 처음이라 굉장히 많은 걱정을 하며 왔다는 <미스트롯2>의 진, 양지은은 현장에서 진행되는 모든 것이 어색하지만, 마냥 수줍지만은 않은 차분한 태도로 임했다. 대학원을 졸업한 후 곧바로 결혼해 아이를 낳고 살아가던 양지은에게 첫 사회생활은 <미스트롯2>로 버라이어티하게 시작됐다. 추가 합격 때, 다시 온 기회라 생각하고 포기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밀어붙이자는 의욕과 함께, 20시간 후에 완벽한 무대를 선보여 다크호스로 급부상하더니, 그의 끈기와 패기는 강진의 ‘붓’으로 진의 영광을 거머쥐게 만들었다.

가족이 그려준 <미스트롯2>라는 큰 그림 둘째 아이를 낳고 산후조리를 하고 있을 때 <미스트롯>을 봤는데, 마미부가 등장하는 것을 보고 너무 멋있다고 생각했다. 마미들도 이런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역량을 뽐낼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을 알고 조리 기간만 아니었다면 도전했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있어서 더욱 프로그램에 빠져들었다. 설거지를 하며 ‘한 많은 대동강’을 부르는 모습을 본 남편이 먼저 트로트에 도전해보라고 권유했고, 아버지는 살아생전에 딸이 TV에 나와서 노래 부르는 모습을 너무 보고 싶다 하셨다. 그래서 첫 번째 무대 역시 아버지와 나의 이야기라 할 수 있는 노래, ‘아버지와 딸’을 준비했던 거다. 경연곡으로는 좀 약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가창력을 보여주기보다 뭉클한 감동과 여운을 줄 수 있는 노래를 하고 싶었다. 의미가 참 많은 곡이다.
‘국악’이라는 18년 내공의 힘 국악 전공자라 성대에 결절이 있어 굳은 상태의 목을 가지고 있다. 국악을 하면 아무래도 발성법상 성대가 긁히고 상처가 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상태에서 노래를 완성하는 것이 사실 프로다. 국악을 하면서 작은 무대 위에서 차곡차곡 경험을 쌓아왔던 것이 도움이 됐다. 트로트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프로그램에 합류한 이후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성장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무대마다 한계를 넘어서고 싶었고 그런 것들이 쌓여온 거다. ‘사모곡’에서는 조영수 마스터가 첫 소절에서 완벽하다는 뜻의 “끝났네”라고 말씀해주셔서 노력했던 것들이 보상받는 기분이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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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트 뮤제, 슈즈 슈바이초이.
더 자세한 인터뷰는 <싱글즈 4월호>에서 확인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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