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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2020.07.23

세상을 읽는 책, 덕질을 위한 탐독서

문학 작품은 작가가 만든 또 다른 세계다. 자신만의 세계관을 구축한 작가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세상을 보는 새로운 시야가 펼쳐진다. 시인, 배우, 칼럼니스트, 출판사 편집자 등 소문난 도서 애호가들에게 물었다. 당신이 ‘덕질’하는 단 한 명의 작가와 그의 세계관을 이해하기 위해 읽어야 할 필독서는?


너를 찾아서 무라카미 하루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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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가장 큰 공포는 소중한 사람이 알 수 없는 이유로 사라지는 것이다. 남자의 가장 큰 모험은 그 사람을 찾아나서는 것이다. 가장 큰 슬픔은 그 모험이 실패했을 때이고, 가장 큰 기쁨은 그 모험이 성공했을 때다. 가장 큰 교훈은 그 모험의 여정이 끝났을 때 온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은 언젠가부터 이 흐름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이 흐름이 가장 강하고 길게 나타난 소설, 하루키의 주제의식이 가장 직설적으로 드러난 소설이 <태엽 감는 새>다. ‘소중한 사람을 찾아 떠나는 하루키풍 모험’은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에서 1권 분량으로 압축되었다가 최신 장편 <기사단장 죽이기>에서 다시 2권 분량으로 늘어나서 반복된다. 나이 든 명연주자의 연주처럼 늙은 작가 하루키의 주제의식과 그를 풀어내는 기술 역시 점차 원숙해진다. 요즘 같은 세상에 ‘남자의 공포’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나는 남자가 여자보다 정신력이 약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남자는 소중한 사람의 상실을 견디지 못한다.
박찬용(칼럼니스트)

우리가 계속 살아가야 하는 이유 황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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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아닌, 을 사람들은 자꾸 아무것도 아닌, 으로 읽는다.” 소설가 황정은의 문장이다. 이 문장을 처음 마주했을 때 나는 몹시 부끄러웠다. 나 역시 세상을, 사람을 쉽게 냉소하는 사람이라서, 희망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라서 그런 말과 행동으로 폭력에 동참하는 사람이라서, 그리고 세상을 희망 없이 바라보는 것은 너무 쉬운 선택이 아닐까. 세상은 글러 먹었어라고 너무 쉽게 생각해버린 건 아닐까. 황정은 작가는 <야만적인 앨리스 씨>에서 폭력이 난무하는 길 위에 앨리시어를 두고 나오며 우리가 폭력의 공범인 사실을 일깨운다. 그렇다면 ‘아무도 아닌’ 내가 납득할 수 없는 이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뭘까. 그녀는 <백의 그림자>에서 보여줬던 사랑이라는 희망을 <디디의 우산>에서 d와 dd의 이야기를 통해 그 의미를 다시금 일깨워준다. ‘아무도 아닌’ 우리가 그 자체로 대체할 수 없는 유일한 존재라는 사실을, 또한 ‘아무도 아닌’ 우리가 폭력과 냉소로 가득 찬 세상에서 서로의 곁을 살피려 애쓰는 일들이, 바로 그 사소한 일을 계속해 나가는 것이 우리가 계속 살아가야 하는 이유라고 귀띔한다. 우리가 황정은 작가의 소설을 계속 읽어야 하는 이유다.
최성경(큐큐출판사 대표)

우리 모두는 연결되어 있다 니콜 크라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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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 크라우스를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데 이상한 감정을 느끼곤 한다. 이토록 대단한 작가를 나는 알고 있는데 너는 몰라서 우쭐한 마음이 있고, 이렇게 훌륭한 작가를 나는 아는데 너는 모르다니 실망스러운 마음이 있어 갈팡질팡한다. 10대 시절부터 마르케스의 소설을 탐독하며 작가를 꿈꾼 니콜 크라우스는 초기 시인으로 등단해 주로 시를 썼다. 이후 2002년 발표한 첫 장편소설 <남자, 방으로 들어간다>가 뉴욕 문단에서 인정을 받으며 소설가로 데뷔, 꾸준히 소설 집필을 이어오고 있다. 국내 출판계에는 몇 년 전 진지한 관심 속에 나왔던 초판 도서가 소리 소문 없이 절판되더니, 최근 신작과 함께 모두 살아났다. 대표작 <사랑의 역사>는 기존 제목 그대로, 그에 못지않은 역작 <그레이트 하우스>는 <위대한 집>으로 제목이 바뀌어 나왔다. 신작은 <어두운 숲>. 특유의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문체와 인간의 고독과 관계, 삶을 촘촘히 풀어내는 서술 방식은 읽을 때마다 마음에 묵직한 파장을 전한다. 니콜 크라우스의 소설은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사는 존재임을 역설하는 빛나는 증거다. 이 증거를 수집할 수 있게 되어 다행이다.
서효인(시인, 민음사 편집장)

자살도 아름다울 수 있지 다자이 오사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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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 오사무만큼 호불호가 갈리는 작가가 있을까. 자신의 인생이 떳떳하지 못하단 생각에 몇 차례 자살을 기도했고 끝내 실패로 깨어난 사람. 마음 저변엔 늘 우울이 차 있어서인지 그의 소설과 수필에는 어두운 기운이 감돈다. 그중 <인간실격>은 그의 유서와도 같은 작품이다. 어느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못하고 자신의 삶을 부끄러워하는 작품 속 주인공 ‘요조’는 그를 꼭 빼닮았다. 이 작품을 쓴 지 1년 뒤 그는 ‘요조’처럼 다섯 번째 자살로 드디어 죽음을 맞이한다. <인간 실격>과 마찬가지로 주인공이 자살을 선택함으로써 끝맺음하는 <사양>은 이와는 반대로 삶의 허무와 함께 주체적인 삶의 선택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그래서 다자이 오사무의 팬들은 <인간 실격>과 <사양>을 독서 루트로 그에게 입문한다. 하지만 그에 대해 깊이 이해하려면 소설보다 산문을 읽어보길 권한다. 그의 가면과도 같은 소설 속 주인공의 독백 대신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가 담겼다. 그중 <이십 엔, 놓고 꺼져>는 그가 작가 활동을 시작한 24세부터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39세까지의 글을 담았다. 성공한 작가로서 여유가 넘치다가도 어느새 우울과 불안에 휩싸이는 그의 내면을 느낄 수 있다. 그의 책을 읽을 때면 스스로 자신의 생애를 마감하는 선택, 죽음 역시 매일을 열심히 살아내는 것처럼 엄청난 일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문득 하게 된다. 자살이 옳은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는 자신의 존엄, 존귀를 지키기 위해 몸을 내던지기도 한다.
유승현(<싱글즈> 피처 에디터)

신과 삶을 소설로 탐문하는 꾸준한 구도자 이승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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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진부한 표현이 되기는 했지만 ‘작가들의 작가’를 말할 때 한국에서 이승우를 빼놓기는 쉽지않다. 르클레지오가 극찬했고, 프랑스에서도 두터운 팬층을 보유한 소설가 이승우의 작품은 기독교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신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심도 있는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고 알려져 있지만, 40여 년간 쌓아온 그의 작품 세계는 알면 알수록 실로 넓고 다양하다. <생의 이면>은 그의 소설을 알아가기 위한 좋은 시작점이다. 한 작가의 일대기를 추적해가는 여정 속에서 그의 원초적 죄책감과 예술적 승화를 다루는 동시에 그 안에 복합적인 개인사와 사랑 또한 절묘하게 드러난다. 한편 비교적 근래 출간된 소설집 <신중한 사람>의 표제작은 ‘신중함’ 때문에 계속 곤경에 빠져 들어가는 사람으로서 그의 많은 소설 캐릭터를 극대화한 인물처럼 보이기도 하다. 세상의 억지와 불합리와 막무가내를 못 견뎌 하는 그들이 결국 세상의 부조리를 유지시키고 보태는 사람이 되는 아이러니를 통해 이승우의 날카로운 유머 감각을 느낄 수 있다. 이승우 소설은 성과 속, 사랑과 갈등을 두루 다루며 현실에서 약 3cm쯤 떠오른 사람의 시선으로 둘러보는 낯설고도 익숙한 세계를 경험하게 한다. 그 빠져듦 속에서 한 권 한 권 책을 읽어가다 보면 언젠가 그의 소설로 꽉 찬 책장 한 칸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나처럼.
최지인(문학과지성사 편집1부 편집장)

소설로 한국을 읽고 쓴다 장강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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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명은 독특한 작가다. 자신의 작품이 ‘취재’의 산물임을 감추지 않는다. 다른 작가들의 소설이 순수한 공상의 산물인 것만은 아니지만, 장강명은 자신이 어떠한 사회적 현상을 바라보며 어떤 내용을 취재하여 소설에 녹여 넣었는지 정직하게 밝힌다. 비유하자면 ‘오픈 키친’에서 요리하는 주방장인 셈이다. 그런 그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책 세 권이 있다. 우선 <한국이 싫어서>. 물론 그 이전에 <표백>을 비롯한 몇몇 작품이 있지만 <한국이 싫어서>를 통해 장강명은 소설가로서 그의 기법을 완성했다. 책이 나올 무렵 한국 사회를 휘감고 있던 ‘헬조선’ 담론의 추억을 곱씹어보는 것은 보너스라고 할 수 있다. 그다음으로는 <댓글부대>. 장강명 특유의 자료조사와 당대적 문제의식을 정보통신 분야의 미스터리 스릴러와 결합시킨 작업이니 말이다. 특히 이 소설에서 다루고 있는 ‘인터넷 여론 조작’은 오늘날까지도 시의성을 잃지 않은 이슈이므로 꼼꼼히 살펴보는 게 좋다. 소설은 아니지만 <당선 합격 계급>도 빼놓을 수 없다. 세상에 손가락질하는 문학가는 많지만, 자신이 속한 문단의 계급 재생산 구조에 대해서 직설적으로 말하는 소설가는 거의 없다. 아니, 장강명 한 사람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정태(칼럼니스트)

온타리오라는 무한수열 앨리스 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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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을 때면 이따금 이분법의 유혹을 느낀다. 말하자면 두 부류의 작가. 예컨대 헤밍웨이처럼 쿠바와 아프리카를 넘나들며 소설의 영토를 확장 하는 타입. 그리고 포크너가 말했듯 ‘우표 딱지만한 작은 고향 땅’을 주된 배경으로 삼는 타입. 끌리는 건 언제나 후자 쪽, 작은 무대로 넓은 세계를 압축하는 쪽이다. 이런 작가들은 좀처럼 ‘마을’을 벗어나지 않는다. 단편소설 작가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앨리스 먼로도 그중 하나다. 1931년 캐나다 온타리오주의 윙엄이라는 작은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먼로는 ‘온타리오 고딕’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냈을 정도로 작품 대부분의 무대를 자신의 고향 마을로 한정해 왔다. 주인공 역시 대부분 온타리오주 시골 마을 출신이다. 캐나다 시골의 보수적인 분위기 속에서 성장한 먼로의 인물들은 일상적인 삶에서 충동적인 선택을 하고, 결정적인 깨달음을 얻고, 존재에 관한 질문을 던지고, 홀연히 제 갈 길을 간다. 배경도 인물도 비슷비슷하다. 나는 이처럼 한정적인 재료로 삶의 복잡한 무늬를 그려내는 그의 솜씨에 매번 무릎을 꿇는다. 폐쇄적인 시골 소읍에서 일평생 가장 중요한 진리를 척척 낚아 올리는 장인의 필력에 혀를 내두르며 서둘러 밑줄을 긋고 책귀를 접는다. 최근 절판됐던 그의 단편집 세 권이 때마침 아름다운 표지를 두르고 다시 모였다. 작가의 생애 첫 단편집인 <행복한 그림자의 춤>을 시작으로 <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 <런어 웨이> 순으로 읽을 것을 권한다. “또 온타리오야?”라는 볼멘 물음이 “또 온타리오야!”라는 뜨거운 감탄으로 바뀌는 마법을 경험하게 될 거다.
강보라(칼럼니스트)

기어코 글 속으로 들어간 여자 아니 에르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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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그리트 뒤라스상, 프랑수아 모리아크상, 프랑스어상, 텔레그램 독자상을 수상한 프랑스 작가. 갈리마르 총서에 편입된 최초의 생존 작가, ‘글쓰기는 나만의 진정한 장소’라 말하는 아니 에르노는 자신의 삶을 솔직한 문체로 풀어내 독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내가 아니 에르노를 처음 접한 건 <세월>을 통해서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으로서, 그리고 글을 쓰는 여자로서 그녀가 적어 내린 글을 한 줄 한 줄 읽으면서, 글로 스스로를 구원하는 용기에 감탄했다. 특히 유방암 투병 생활 중에 그녀의 연인인 마크 마리와 살을 섞는 동안 느낀 느낌을 사진과 글로 담아낸 <사진의 용도>는 욕망과 실재, 죽음의 기록처럼 다가왔다. 목화에서 실을 뽑아내듯 기어코 글 속으로 걸어 들어간 아니 에르노의 신념은 <진정한 장소>에서도 엿볼 수 있다. 그동안 작품 활동의 배경이 되는 아니 에르노의 삶과, 우리가 왜 글을 쓰고 사유하는 일을 멈추지 않아야 하는지에 대한 아니 그녀의 생각을 담은 이 책은 내가 페이지 귀퉁이를 가장 많이 접고, 밑줄을 가장 많이 친 책 중 하나이기도 하다. 얼마 전 그녀의 신간 <빈 옷장>이 출간됐다. 역시나 시대를 살되, 시대에 침수되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는 그녀의 애씀이 곳곳에 묻어난다.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든다면 그녀의 책을 꼭 읽어보시길.
김모아(배우 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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