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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2020.11.20

까짓것, 그게 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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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히 바란다고 해도 이루어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 유독 올 한 해가 그랬다. 선택을 할 때는 신중하지만, 선택하고 난 뒤에는 주변을 돌아볼 틈도 없이 속도를 냈었는데, 올해만큼은 선택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 많았다. 사방이 가로막힌 상자 안에 숨죽여 있던 꼴이랄까. 간혹 선택지가 주어질 때도, 예전에는 단호하게 선택하던 것도 주춤거리게 된다. 혹시 하는 마음이, 불안함이 앞서기 때문이다.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던 에너지는 모습을 감춘 지 오래인 듯, 보일 기미가 없다. 이런 현상은 누구에게나 있겠지만, 누구나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은 숨 고르기가 필요한 순간이다. 독선적인 정의감을 휘두를 때가 아니며, 몸살 나게 부러웠던 타인의 범위에 정신 팔려 나의 영역을 잃지 말라는 경고다. 새삼스레 아쉬워할 필요도 없을 테다. 길이 험할수록 경관이 아름다운 법이다. 기다리면 곧 지나갈 일들이니까.

숨 고르기의 시작은 불필요한 욕망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욕심껏 안 되면 비난할 대상을 찾게 마련이다. 대개는 나 아닌 타인을 공격하기 쉽다. 남 탓하는 건 더 보기 싫은 게 사람의 마음이다. 또 어떤 경우는 그 탓을 자신에게 돌리기도 한다. 문제 해결보다 자신을 더욱 채찍질한다. ‘더 잘해, 더 노력해, 더 참아.’ 그래서 성실함이 고통이 되기도 한다. 자신을 타인과 비교할수록 고통은 더 커진다. 인간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고 하지만, 과도한 인정 욕구는 자신을 노예로 전락시킬 뿐이다. 필요한 만큼 견디는 기술을 습득해야 한다. 내게 다가오는 것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타인의 평가 속에 산다는 것은 그런 거다. ‘왜, 나만 이럴까?’ 하는 식의 자기부정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구태의연하게 겸손한 것도 꼴불견이지만, 자기 폄하는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질 않는다. 부정적인 감정을 만들어내는 무의식적인 판단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감정이란 꼭 상식적인 게 아니다. 이성과 달리 움직이는 마음을 기다려야 한다. 마음의 속도를 존중해야 한다.

2020년의 끝자락, 한 해 동안 내가 해왔던 선택과 그 결과를 떠올려보니, 불현듯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이 바로 숨 고르기임을 깨닫는다. 자신의 주저함에 시간을 주어야 한다. 하던 일을 멈추고, 회사의 맨 꼭대기에 있는 옥상 정원으로 올라갔다. 회사가 이전한 지 4년이 넘었지만 이번이 두 번째다. 오랜만에 맞는 직사광선이 피부에 닿는 느낌이 낯설었다. 좋은 냄새가 났다. 따뜻하고, 포근한 햇살의 냄새다. 그동안 이곳을 너무 홀대했다. 벤치에 앉아 올려다본 하늘은 시야에 아무것도 걸리지 않는다. 빌딩도, 사람도, 심지어 구름도. 적막과 고요가 이렇게나 좋은 것이었나. 16층에서 내려다본 서울 시내가 정겨워 보이는 건, 소음이 차단되고 느리고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 덕택이지 않았을까. 굼뜨게 흘러가는 시간만큼 토라진 마음과 시위하는 몸이 점점 평온을 찾기 시작했다. 손에 들고 있던 커피가 금세 바닥을 드러냈다. 머릿속 한가득 근심이 어느새 빨빨거리며 달아났다. 옥상 정원의 시간은 함부로 나의 걱정을 내려놓는다. 이런 일상적이면서도 별스러운 오후가 지나가고 있었다. 별것 아닌일이 별것이 되는 순간이다. 도심의 게으름이 알려준 진실, 해서 즐거우면 그만이다. 까짓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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