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GLES

메뉴
Search
마이페이지

Life2021.05.27

요즘 우리 멘토, 할머니

K 할머니에게는 멘토의 자격이 충분하다.

null
영화 <미나리>의 물결이 거세다. 지금까지 <미나리>가 세계를 휩쓸며 수상한 상의 이름은 이 지면을 꽉 채워도 모자랄 정도다. 콧대 높기로 유명한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아시아계 미국인 최초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 한국 최초의 여우조연상 후보를 배출하기도 했다. 매체를 통해 영화의 다양한 면이 주목받지만 많은 여성의 마음에 안착한 화제의 인물은 74세의 배우 윤여정이다. 1966년 TBC 공채 탤런트로 데뷔한 그는 스크린 안에서나 밖에서 전형적인 할머니 모습을 탈피했다.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어떤 감독도 나를 가지고 연출하려 하지 않아요. 선생님 좋을 대로 하라고 하죠. 그런 환경에 있으면 괴물이 될 수 있어요. 그게 매너리즘이죠. 환경을 바꿔 미국 현장에서는 내가 노바디(Noboby)예요. 연기를 잘해서 내 존재를 보여주는 방법밖에 없죠.”

오랜 시간 일을 하며 권태로움을 잃지 않는 면은 일을 하는 우리의 자세를 돌아보게 했다. 동시에 그는 겹겹의 시간만큼이나 우아한 여유와 내공이 상당하다. 지난 12일 열린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조연상 수상 소감을 전하는 과정에서 그는 농담의 정수를 보여줬다. “고상한 척하는 영국인들이 나를 좋은 배우로 인정해줬다”라며 그 누구도 불편해하지 않고 유쾌하게 웃어넘길 수 있는 강도이자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남편인 필립공을 애도한 뒤에 배치하는 구조까지 완벽했다. 이런 그의 모습을 보고 매력에 서서히 스며들어 헤어나오지 못하는 현상을 뜻하는 ‘윤며든다’라는 표현도 생겼다.

닮고 싶은 구석이 넘쳐흐르는 할머니의 모습은 최근 몇 년 사이 반갑게 목격할 수 있었다. “네 장단에 맞춰 살아” “실패는 뭔가를 했다는 증거다. 실패가 쌓이면 그게 경력이다. 성공할 애들이 실패도 하는 거야”라고 말하는 박막례 할머니, “책임져주지 않을 사람들이 하는 말에 대해서는 귀를 막아라” “나쁜 파트너를 만나는 것보다 혼자 사는 게 낫다”라며 주체적인 자세의 경지에 오른 유튜버 밀라논나는 이미 여러 2030세대가 존경하는 인물이 됐다. 예민한 꼰대 안테나로 윗사람의 말과 충고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던 이들이 어떻게 할머니를 향해서는 롤모델의 시선을 장착하게 되었을까?
null
윤여정과 박막례, 밀라논나의 메시지는 공통적으로 그 누구도 아닌 ‘나’가 되기를 이야기한다. 이는 K 장녀, 유교걸로서 참고 희생해온 여성의 삶에 사이다 같은 통쾌함을 선사한다. 지금보다 폐쇄적이었던 사회 속에서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이들은 자신과 같은 실수를 하거나 후회하지 않도록 삶을 더 이로운 방향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한다. 그리고 그 메시지의 결론은 ‘너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아’라는 쪽으로 좁혀진다. 실패와 좌절을 자주 마주하는 청춘이라면 누구나 듣고 싶었던 말이다.

게다가 황혼 가까이 현역 커리어 우먼으로 활약하는 모습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든든한 응원이 된다는 점 또한 이들을 향한 팬심을 불태우게 만든다. 생각해보면 할머니의 존재가 언제 이렇게 위대했던 적이 있나 싶다. 지금이야 아이 돌봄을 노동으로 인정 전문 튜터라는 직업이 생겼지만 1980~1990년 생인 나의 세대에는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는 경우 할머니가 대체 양육자가 되는 경우가 빈번했다. 일하는 엄마를 대신에 가정을 돌보고 우리를 뒷바라지했다. 간접 교육자로서의 할머니는 늘 무언가를 ‘해라’ 대신 ‘하지 말라’는 말을 자주 하셨다. 내 아이가 곧은 길로 잘 자랐으면 하는 마음에 본인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강요하고 행동을 교정했다.

하지만 가치관이 생기고 의사 표현을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훈훈한 날보다 쌀쌀한 날이 더 많았다. 급변하는 세상만큼 다른 가치관을 장착하니 시간이 갈수록 생각의 차이는 좁혀질 수 없을 만큼 벌어졌다. 다 나 잘되라고 하는 할머니의 조언은 점점 잔소리로 전락했다. 현실의 할머니는 영화 <미나리> 속 순자의 희생적인 면에 더 닿아 있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고춧가루, 한약재, 멸치를 싸들고 산 넘고 물 건너 미국까지 가는 놀라운 사랑을 품은 사람. 외국인들이 영화를 보고 Grandma 대신 Halmoni라는 고유명사를 사용할 정도로 그 희생과 애틋함에 감동하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나는 그때 받은 할머니의 사랑으로 지금과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엄마와는 다른 방식으로 전해주던 할머니의 지혜, 예절, 사랑이 나를 채웠다. 멋있는 할머니, 뜨거운 할머니, 쿨한 할머니, 따뜻한 할머니 등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할머니의 모습은 어떤 방식으로든 지금의 우리를 키웠다.
#라이프 #멘토 #박막례 #밀라논나 #미나리 #윤여정 #할머니 #K할머니
<싱글즈>의 모든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 복사, 재배포 등을 금합니다.
좋아요
목록보기


공유하기

닫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 URL복사

해당 페이지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해당 페이지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가 필요합니다.
나의 포인트 :

주소찾기

닫기
주소검색

동, 읍, 면, 기관, 학교 등의 이름을 입력하세요